닿지도 않을 말 해서 무슨 소용이라도 있나. (눈 깜박거리다가 대충 벽에 등 기댔다. 피곤해서 그런가, 답지 않게 청승이라도 부리게 된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놈한테 허공에 말 거는 거.) 너 있을 때가 편하긴 했어. 난 뭔갈 책임지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고, 어지간한 건 네가 다 책임졌지. 난 그냥 부수적인 것만 처리하면 됐으니까. 그래, 그래서, 너한테 제법 익숙해진 것 같아. 그리고 그게 끔찍했어. 뭐든 익숙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면 그게 날 떠나거나 버리거나, 내쳐졌을 때 지나치게 슬퍼하게 되니까.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신뢰하지 않으면 배신감도 없어. 버려졌을 때의 절망감도 없지. (고개 기울이면서 눈 감는다. 웃음 흘렸다.)
이렇게 될 것 같아서 기를 쓰고 밀어낸 거였는데. 나는 실패했고, 넌 성공했네. 그게 끝이야. 축하해, 승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