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초에 돌연 은퇴를 선언한 퀴디치 월드컵 선수 제로 블라인드(21). 아직 어린 나이에 팀 내 구심점에 가까운 자리에 있던 선수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은퇴 사유를 궁금해 했다. 모두가 주목하는 샛별같은 그를 예언자 일보가 독점으로 인터뷰할 기회를 얻었다. 해당 인터뷰는 1991년 9월 21일자에 질답한 것을 녹음하여 서면으로 옮긴 것임을 밝힌다.
-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 우선 푹 쉬었다. 어릴 때까지 통틀어서 인생 중 가장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해본 것 같다. 훈련조차 안 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아무래도 휴식이 제일 적성에 맞는 것 같다. 그 외에는 이래저래 생각만 했다.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던지, 일정으로 바빠 못 만났던 친구들을 한꺼번에 본다던지. 물론 아직 실행에 옮긴 것은 없다. 휴식 전에는 정리로 정신이 없었고, 한 번 쉬기 시작하니 도통 움직일 생각이 안 들었다.
- 급작스런 은퇴 사유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슨 문제가 있기라도 했나?
: 궁금증이나 염려해주시는 마음들까지 전부 알고 있다. 생각들 하시는 것 만큼 어둡고 거창한 이유는 없다. 우리 팀 사람들은 다들 착할 뿐더러, 불화가 있었다면 내가 진즉 뛰쳐나왔을 성정임을 기자님과 이 인터뷰를 보실 독자들도 아시리라 생각한다. 계약 상의 문제도 없다. 1년 단위로 갱신하하는 계약이었고, 은퇴 전 날이 계약 만료일이었다. 관계된 모든 분들과는 은퇴 선언 전 충분히 합의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친애하는 우리 팀에 위해가 가지 않기를 바란다.
- 그렇다면 자세한 이유를 답해줄 수 있는가?
: 우선 컨디션의 이유가 컸다. 퀴디치 특성 상 한 경기마다 체력 소모가 굉장히 심하고 부상의 위험도 많다. 각별히 조심하고는 있으나 어려울 때가 있다. 후유증처럼 쌓이는 종류의 것들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다. 은퇴 선언에서는 더 혼란을 야기할까 저어되어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으나, 현재 시력이 좀 나빠졌다. 일상 생활에는 문제가 없으니 걱정을 더하지는 않으셔도 된다. 다만 경기 진행에는 무리가 있음을 인지했고, 전문가에게 휴식이 필요함을 진단받았다. 앞서 말한 것은 공적인 사유고, 개인적인 사유를 들어보자면 역시 목표를 완수한 것에 있겠다. 90년 열린 월드컵에서 우리 팀이 감사하게도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것보다 잘 해내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누렸고, 이제 내 다음을 위해 기회를 넘겨줄 때라고 느꼈다.
- 기회를 넘겨줄 때?
: 내가 퀴디치를 시작한 게, 호그와트에서 2학년이 되자마자 였으니 열둘이다. 마법세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면 나보다 더 일찍 퀴디치를 접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 친구들이 지금의 나를 보고 꿈을 꾸고 있다. 이미 한차례 꿈을 이룬 사람으로서, 내 다음을 노리고 있는 친구들이 더 쉽고 편하게, 즐기면서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고 싶다고 여겼다. 최근 팀에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들어왔다. 내가 이룬 일을 그 친구들이 다시금 이뤄줄 것이고, 어쩌면 더 높은 하늘에 뜨는 별이 될 수도 있다. 나를 사랑해주시는 여러분들이 내가 이 곳을 떠남에 아쉬움을 느끼신다면, 부디 그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내가 기대를 품게 한 사람들이다. 쉬이 여러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리라고 자신할 수 있다.
- 뒷일까지 생각한 것으로 봤을 때 은퇴 번복은 전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앞으로 퀴디치는 전혀 하지 않을 생각인지?
: 바로 보셨다. 은퇴를 번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공적인 장소에서 경기를 뛸 생각은 없다. 퀴디치와 비행은 여전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종목이다. 취미로 이어갈 생각 정도는 있으나, 이전처럼 시합에서 날아다니는 내 모습을 보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우리 팀과 함께 시합을 반복했던 나날들은 내게 오래도록 행복으로 남아있을 것이나⋯ 이제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
- 다른 일이라면?
: 맨 처음에도 말했지만, 여행이다. 아, 사진을 찍거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친구들한테 말해놓은 바가 있어서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 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가보고 싶다. 이미 목록을 꼽아놓은 장소들도 여럿 있다. 어쩌면 이제 경기장 안에서보다 더 자주 나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이래저래 바쁘게 돌아다닐 예정이라. 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흔해진다고 해서 완전히 관심을 끊어주지는 말았으면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아직 있다. 보여주고 싶은 광경도 많다. 부디 오래 오래 봐주시길 바란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나?
: 우선 이 은퇴 선수에게 관심을 보여줌에 감사드린다. 말년이 외로워질까 걱정이었는데 그건 생각 안 해도 될 듯 해 안심했다. 또한, 이 자리가 우리가 만날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주셨으면 한다. 얼마든지 다시 볼 수 있다. 우리가 같은 하늘 아래 숨 쉬는 한 우연은 언제고 우리를 이어주므로. 내가 할 말은 하나로 정해져 있는 것 같다.
See you again!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여러분과 나에게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긴 인터뷰를 마치고 제로 블라인드는 후련한 얼굴로 나갔다. 그 와중에도 함께 한 사람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품격이 있는 사람이었으나 무겁지는 않았다. 그가 단순히 성과를 좋게 내서 뿐만이 아니라 사람을 존중해주는 태도를 항상 보였기에 우리가 그를 그리도 사랑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사랑받은 만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의 다음을 예고했지만, 우리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예언자 일보의 제로 블라인드 독점 기사는 일주일 후 그의 연대기를 돌아보는 후속 기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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