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뮤/Zero

Alone

' 그래서, 언니. 언니가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낭만이 대체 뭔데? '

' ⋯그거? 별 거 아냐. 그냥 너네 웃고 싶은 만큼 실컷 웃는 거. '

 

 


 

 

 

‘선수가 된다고 잘난 척을 하더니, 저 꼴을 봐. 결국 발목만 붙잡고 있잖아⋯.’

 

‘제로 블라인드, 그거 고집이야. 안 되는 거 알면 포기해야지.’

 

그래, 저런 말도 들어봤지. 들려온 속닥거림에는 웃음이나 한번 흘릴 뿐이다. 신경 쓸 부분이 아니라고, 하던 거나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제법 아프게 박혔던 말들이다. 고집 부리고 있는 것도 맞고 발목 붙드는 것도 맞으니까. 포기하는 건 싫었고, 바라는 만큼 손에 잡히지는 않았고.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손바닥에 손톱이 박힌다. 정신차려야지. 이건 수업이고, 제대로 해야 덜 부끄럽지 않겠나⋯.

 

‘운 좋게 얻은 재능이 다 제 덕인 줄 아는 오만한 작자.’

‘더러운 피가 다 그렇지.’

 

질리도록 들어온 말들에 들어갔던 힘이 풀린다. 예고 없이 주어진 재능과 삶이므로 언제 제게서 빠져나가도 이상하지 않으리라고 여겼다. 사람에게는 가장 최악의 일도 빈번히 일어난다. 그렇게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아도 쉽게 끝나지 않는 게 삶이라서 어렵고 차가웠다. 허공을 짚은 시선이 벽장 안으로 가 닿는다. 그래서, 정말 이게 내 두려움의 전부인가? 절벅, 절벅 하는 소리. 젖은 땅을 느린 보폭으로 밟는 소리. 아, 이런 소리를 안다. 겨울, 그러나 눈송이가 되지 못한 물방울들이 내리쳐 땅을 적시고 사람을 적실 때. 불쾌감과 무기력에 짓눌려가는 이들이 저렇게 걸어가곤 했다. 소리의 주인을 확인한다. 한 쪽 다리를 쓰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결국 멈춰서는 인간의 형상. 눈을 확인하면 그 자리 어디에도 말간 금빛이 없다. 온통 파래서 다 죽어버린 시체같다. 실패자구나. 꼴사납네. 

그러나 저것이 공포스럽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닌데. 되고 싶지 않은 형상이긴 했다. 다 포기해버린 사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이. 날지 않는 새와 힘을 잃은 죄수. 

 

그러한 사고를 읽어냈는지, 사람의 공포에 기생하는 생물이 불안정하게 일그러진다. 고장난 테이프처럼 지직거리는 장면들이 떠올랐다가 스러졌다가. 주머니에 간식이 있던가? 이걸 끝내고 나면 주방에 가서 따뜻하고 달달한 걸 만들어서 먹자. 아무나 붙잡아서 함께 있어도 좋을 거고. 이런 때라면 누구든 혼자 있기는 싫어하지 않겠어. 그 때 쯤, 불안정하게 일렁거리던 형상이 하나의 집을 만든다. 판자와 벽돌, 얼기설기 아무렇게나 얽힌 재료로 세워진 벽. 깨진 창문. 제로 블라인드는 그 집을 몰라볼 수 없었다. 블라인드의 보금자리, 우리들의 요람. 사람과 사람의 집합으로 언제나 소란스럽던 그 집, 우리들이 세우고 가꾼 울타리. 항상 복닥거리던 그 자리가.

오늘은 왜 그리도 조용하고 차갑던지.

 

아무렇게나 열려버린 문 틈새로 본 것은 홀로 남아 바닥만을 바라보는 자신이었다. 더 이상 하늘과 별을 조망하지 않는 형태. '혼자 남은 숫자.' 그래, 그렇구나. 새삼스럽지만 저는 참 여전히 아이답게도,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리 못 견디게 두려웠나보다. 힘이 빠져 지팡이가 손에서 흘러내리려는 것을 겨우 잡아채고는, 의식적으로 웃는다. 14년의 시간 동안 제 곁에 아무도 없었던 적이 드물었다. 사람에 의해 살았고 사람을 위해 살았다. 최초의 기억이 누군가의 웃는 얼굴이었으므로, 그것에 대한 각인으로 움직였다. 모든 방랑의 사유에 네 웃음을 붙였다. 그런 식으로 어떻게든 혼자 되지 않기 위해 걸었다. 마음에 사람을 품고서. '제로 학생, 괜찮은가요?' 교수님의 목소리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음을 자각한다. 고개 들고 그린 듯 웃는다. 네, 저 괜찮아요. 정말로요⋯. 속삭임에 비슷한 수준으로 중얼거리고는 자세를 바로 한다. 웃는 건 잘하잖아, 괜찮아.

 

지팡이 끝을 뻗어 그 고요한 장소를 겨눈다. 정확하게 휘두르면서, '리디큘러스!'

 

머리 굴려보건데 주문이나 움직임에는 오류가 없었다. 가슴께 언저리에 남은 일렁거림을 짓밟아 무시해버린 채로 울렁거리는 형상을 바라본다. 고정된 형상은 여전히 집이다. 그러나 밝다. 문 틈새에서 사람들이 보였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세피아 색 잉크로 그려낸 듯한 풍경, 따뜻하고 전형적인, 아주 사소한 행복.

 

위선이라고 할 지라도 이런 걸 바랐다. 너희들이 웃는 게 좋았어. 그걸 보고 싶어서 뭐든 해내고 싶었어⋯. 눈가에서 물기가 비집고 나오는 걸 손바닥으로 꾹 눌러 막아버린다. 웃음이 가득한 광경을 두고도 뒤로 몇발자국 물러나버렸다.

 

'커뮤 > Zero' 카테고리의 다른 글

See you again!  (0) 2022.07.02
GOTCHA!  (0) 2022.07.01
Missing: Golden Romance  (0) 2022.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