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뮤/Licentia

낭만이 숨을 죽인다

리첸티아 블리스 서머싯은 사실, 스스로의 두려움을 잘 알았다. 무언가를 가장 사랑하는 이의 숙명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장 사랑하면서도, 그것이 어느날 스러지고 사라지는 것을 못 견뎌 결국 그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 사랑이어서. 그는 제 앞에 나타난 보가트가 이렇게 변할 줄 알았고,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어느 정도는 해뒀다. 저것은 환상, 거짓의 일종. 감히 사랑하는 나의 서머싯을 흉내내어 균열을 만들어내려는 그릇되고 잘못된 것. 봄날 꽃내음이 얼마나 향기롭게 풍겨오던, 분홍색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것과 라일락색 눈이 싱그럽게 반짝거린다 하여도, 저 웃음소리가 얼마나 달큰하게 귀에 들려와도 이건 환상이고, 깨어져야 마땅한 것이라고,

아, 그러나 사랑이 발명된 이후로 인류는 항상 그것의 패자였기에.

리첸티아 블리스 서머싯은 몇번이고 입을 달싹거리다가 결국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죄송해요, 못하겠어요. 흘려낼 수 있는 거라고는 죄 흔들림 뿐이다. 목소리도, 눈동자도, 손도 뭐 하나 제대로 움직이는 법이 없다. 감히, 내가. 어떻게. 봄날 태풍을 맞은 꽃나무가 꽃잎 떨어트리듯이 그렇게 사그러든 속삭임, 승복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공포의 풍경을 망연하게 쳐다보며 흐릿한 목소리를 냈다.

" 악몽을 꾸는 것 같아. "

그러나 모든 것이 현실이라 어디에도 도망칠 곳이 없었다.

'커뮤 > Licent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낭만의 종막  (0) 2022.02.09
02  (0) 2022.02.02
01  (0) 2022.02.01
00  (0) 2022.01.31
계율 그 첫째 : 사랑하고 사랑받으라, 하염없이!  (0) 2022.01.27